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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이야기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왕건, 궁예, 견훤) 고려 이야기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왕건, 궁예, 견훤) 왕건의 후삼국 통일의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왕건과 궁예와 전원, 이 세 사람의 영웅이 등장하는 시기입니다. 자 강의 제목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렇게 잡아 봤는데요, 좀 이상하신가요? 실제로 왕건과 견훤과 궁예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The good, The bad, The ugly라고 하는 제목의 영화 제목에 빗대어 쓴 외국 학자의 논문이 있습니다. 물론 왕건이 좋은 사람이었겠죠. 이 세 사람이 등장하는 그 시대 신라 말에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아주 드문 혼란기였습니다. 신라 말에 정치가 혼란해지는데, 이 혼란한 정치는 왕위를 둘러싼 쟁탈전으로 나타납니다. 신라에서 진골 귀족만이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은 다 아.. 더보기
불교 유교가 공존한 고려 불교 유교가 공존한 고려 고려는 어떤 나라인가 고려의 3번째 이미지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불교와 유교는 참 다른 종교이고 사상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개가 공존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우리가 익숙한 우리에게 익숙한 억불숭유라고 하는 것이 이 불교와 유교가 얼마나 공존하기 어려운 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이 두 개의 종교 사상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고려는 불교 국가였습니다. 고려 인구가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 1000만 명은 조금 안 됐을 것입니다. 이 1000만 명이 안 되는 그 사람들이 위로는 국왕부터 아래로는 아주 밑바닥에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믿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불교를 믿으면서 공덕 신앙이.. 더보기
황제국 고려 - 고려의 국제적 위상 황제국 고려 - 고려의 국제적 위상 황제국 고려라는 주제로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 고려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는 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이때는 고려를 둘러싼 동아시아에 다원적 국제질서가 형성됩니다. 이 다원적 국제질서 안에서 고려가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 주제가 되겠습니다. 먼저 강의를 진행하기 전에 핵심적인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책봉과 조공 그리고 사대라고 하는 용어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봉이란 중국의 황제가 주변 국가의 지배자, 대체로 국왕들을 인정해주는 의례적인 절차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중국 왕조의 책봉을 받았는데요. 그 사례를 보시면 이와 같습니다. 고구려 장수왕이 북위로부터 책봉을 받는 .. 더보기
귀족 문화가 발달한 고려 귀족 문화가 발달한 고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에 그다음에는 고려 왕실과 호족들의 관계를 설정한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합니다. 그 이전까지 같은 호족이었던 왕건을 다른 호족들이 이제 국왕으로 인정해야 된다고 하는 문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고려 왕실은 중앙집권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서 이 호족들과 군신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태조 왕건 때에는 호족들의 지위를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충성을 이끌어 내는, 어떤 점에서는 인정과 타협이라고 하는 정책을 폅니다. 유명한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가 대표적인 것입니다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호족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방의 이름을 새로 정해준다거나 그 호족들에게 성씨를 내려 준다거나 또 호족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역 분전 제도를 실시하는 것.. 더보기
고려 태조의 토성 나눠주기 정책 고려 태조의 토성 나눠주기 정책 고려 초의 지방 세력은 성씨를 어떻게 만들어서 사용했을까요? 자기들이 스스로 적당한 성씨를 만들어서 사용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고려 왕실이 지방 세력에게 회유책의 일환으로 성씨를 나눠주는 정책, 이것을 토성 분정이라고 합니다만, 이런 정책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에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그러니까 자기를 도와준 호족들에게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다고 하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사심관 제도, 기인 제도, 그리고 유명한 결혼 정책, 또 왕 씨 성을 같이 사용하게 하는 사성 정책,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만, 특히 태조 23년(940년)에 세 가지 중요한 정책이 동시에 추진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전.. 더보기
넓은 세상과 교류한 고려 넓은 세상과 교류한 고려 한반도는 바깥으로 나가기에는, 더군다나 옛날처럼 하늘길을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참 불리한 위치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상대적으로 넓은 세상과 교류한 것이 바로 고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영문 이름 Korea가 바로 고려를 가리키는 것이죠. 넓은 세상에 고려가 알려짐으로써 Korea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려가 넓은 세상과 교류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중국과의 활발한 무역 덕분이었습니다. 예성 강곡이라고 하는 고려의 노래가 지금 전하고 있습니다. 고려사 악지에 전하고 있는데요. 그 서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옛날에 당나라 상인 하두강이 바둑을 잘 두었다. 예성강에 이르러 어떤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 그녀를 내기 바둑으로 빼앗고자 하여, 그 .. 더보기
본관제 해체 후의 변화 본관제 해체 후의 변화 고려 전기에 대민 통치제도였던 본관제는 고려 후기에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관제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대신 형해화되죠. 다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고려 후기 이후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가서 본관제가 어떤 기능을 하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에 들어가면 출신지와 거주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보편화됩니다. 그러면서 본관제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시조가 난 곳 정도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후손들에 의해서 조상의 본관이 미화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이런 일이 많이 벌어지는데요, 조선의 왕실부터 이런 미화 작업에 앞장섭니다. 조선의 왕실, 전주 이 씨의 족보를 보면 고려 말에 쓰인, 다시 얘기해서 왕이 되기 전에.. 더보기
본관제의 기능과 의미 본관제의 기능과 의미 고려 초에 성립한 본관제가 어디 무슨 씨라고 하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대민(對民) 통치의 한 수단이라고 하는 점까지 살펴봤습니다. 지금부터는 고려시대에 본관제가 어떤 기능을 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에서 본관과 성씨를 연이어 사용하는 본관제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것은 고려의 지방제도의 특징 때문입니다. 먼저, 고려 지방제도의 정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려에서는 태조 23년에 군현의 이름을 정한 적이 있습니다. 태조에게 협력한 공로를 기준으로 주·부·군·현·향·소·부곡 이런 등급을 지방 이름에 두었다고 하는 점까지는 지난 시간에 설명을 했는데요, 이것이 점점 정비되어 성종 2년에 주 가운데 12곳을 '목(牧)'으.. 더보기